겨울 숭어, 어묵 원료로만 알면 억울한 생선이다
숭어를 생선을 사람들은 많이 모르거나 혹은 단순하게 어묵 원료로만 아는 분들이 많다. 물론 숭어는 어묵 원료로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그것만 알면 숭어에 대해서 절반도 모르는 것이다.
숭어 알로 만든 어란은 국내에서 가장 고급 수산물 가공품 중 하나다. 숭어 알을 소금에 절여 말린 것인데, 얇게 썰어서 먹으면 진한 감칠맛과 짭조름한 맛이 복합적으로 올라온다. 가격도 상당하다. 어묵 원료로 쓰이는 생선이 이런 고급 부산물을 만든다는 것이 처음엔 잘 연결이 안 됐다.
아버지한테 숭어 이야기를 꺼냈더니 어란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신안에서 숭어 어란 만드는 곳이 있어. 겨울 숭어 암컷에서 알을 꺼내서 만드는 거야. 알이 꽉 찬 겨울 암컷 숭어가 그래서 비싸. 어묵 원료가 아니라 어란 원료야.”
겨울 숭어 암컷이 고급 식재료였다. 어묵 재료라는 이미지가 겨울 숭어 암컷의 가치를 가리고 있었다.
숭어 제철과 겨울 암컷의 가치
숭어는 봄과 겨울 두 번의 제철이 있다. 봄 숭어는 산란 전이라 살이 오른 상태고, 겨울 숭어는 지방이 충분히 축적된 상태다.
이 중 겨울 숭어 암컷이 특별한 이유는 알 때문이다. 12월에서 2월 사이 암컷 숭어는 배 속에 알이 가득 찬다. 이 알이 어란의 원료다.
어란 제조 과정은 단순하지 않다. 알을 꺼내 소금에 절이고 무거운 것으로 눌러서 납작하게 만든 뒤 천천히 말린다. 수십 일에서 수개월이 걸리는 과정이다. 완성된 어란은 표면이 황갈색에 윤기가 흐르고, 썰면 속이 주황빛이다. 얇게 썰어 참기름을 바른 것을 밥 위에 올려 먹거나 술안주로 먹는다.
신안산 어란이 특별한 평가를 받는 이유가 있다. 신안 갯벌과 인근 해역에서 자란 숭어가 먹이 환경이 풍부해서 알의 품질이 좋다는 것이다. 신안 섬마다 수산물 맛이 다르다에서 도초도와 비금도 해역을 다뤘는데, 이 해역 숭어의 알이 어란 원료로 쓰인다.
겨울 암컷 숭어를 시장에서 살 때 배딱지를 살짝 눌러보면 알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배가 두툼하고 눌렀을 때 탱탱한 저항감이 있으면 알이 충분히 찬 것이다. 이 상태의 암컷 숭어를 조리할 때 알을 따로 분리해서 소금에 절여두면 간단한 어란을 만들 수 있다.
자연산 숭어와 양식 숭어
숭어는 주로 자연산이 유통된다. 양식 규모가 크지 않아서 시장에서 보이는 숭어 대부분이 자연산이다.
그런데 서식 환경에 따라 맛 차이가 크다. 깨끗한 바다에서 사는 숭어와 오염된 하구나 항만 주변에서 사는 숭어가 다르다.
숭어는 잡식성이고 갯벌 유기물을 먹으며 산다. 서식 환경의 수질이 숭어 맛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깨끗한 해역에서 자란 숭어는 살이 담백하고 비린내가 적다. 오염된 지역 숭어는 흙 냄새나 특유의 잡내가 강하다.
산지 확인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신안, 완도처럼 수질이 좋은 해역 숭어와 도심 항만 주변 숭어는 같은 어종이지만 맛이 다르다. 시장에서 숭어를 살 때 어디서 잡힌 것인지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외형으로 서식 환경을 짐작하는 방법이 있다.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숭어는 비늘이 밝은 은빛에 가깝고 광택이 살아있다. 오염 환경 숭어는 비늘이 탁하거나 녹빛이 도는 경우가 있다. 배 쪽도 깨끗한 환경 숭어가 더 흰빛이다.
겨울 숭어 맛있게 먹는 방법
회로 먹는 방법이 가장 먼저다. 겨울 숭어 회는 담백하면서 지방이 적당히 올라있어서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일부 지역에서는 숭어 회를 즐겨 먹는 문화가 있는데 내륙에서는 덜 알려져 있다.
숭어 회는 두껍게 써는 것이 맞다. 살의 결이 굵어서 얇게 썰면 씹는 맛이 없다. 5mm 내외로 두껍게 썰면 숭어 특유의 쫄깃한 식감이 살아난다.
회로 먹기 부담스럽다면 조림이 가장 무난하다. 숭어 조림은 간장 양념을 넣고 뭉근하게 조리는 방식이다. 무를 함께 넣으면 무가 숭어 기름을 흡수하면서 맛있어진다.
숭어 매운탕도 좋다. 뼈에서 진한 국물이 나오고 살이 탄탄해서 탕 요리에 잘 어울린다. 우럭 매운탕과 비슷한 방식으로 끓이면 된다.
내장 중 이리(수컷 정소)도 별미다. 겨울 숫컷 숭어에서 나오는 이리는 부드럽고 고소하다. 살짝 데쳐서 먹거나 탕에 넣으면 국물이 더 깊어진다.
| 부위 | 요리법 | 맛 특징 |
|---|---|---|
| 살 | 회, 조림, 매운탕 | 담백하고 씹는 맛 |
| 알 (암컷) | 어란으로 가공, 볶음 | 진한 감칠맛 |
| 이리 (수컷) | 데침, 탕 | 부드럽고 고소 |
| 뼈·머리 | 탕, 국물 | 진한 국물 |
숭어가 저평가된 이유
숭어가 어묵 원료로 알려지면서 저가 생선 이미지가 생겼다. 어묵 원료로 쓰인다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닌데 그 이미지가 앞서버렸다.
일본에서 숭어 어란인 카라스미는 고급 식재료로 대접받는다.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 어란이 귀한 음식이었다. 어란 가격이 100g에 수만 원을 넘는 경우도 있다. 어묵 원료와 고급 어란이 같은 생선에서 나온다는 것이 숭어의 두 얼굴이다.
겨울 암컷 숭어를 시장에서 보면 가격을 확인해보시길 권한다. 어란을 만들 수 있는 상태의 암컷 숭어가 합리적인 가격이라면 이득이다. 알을 어란으로 만들든, 조리해서 먹든 겨울 암컷 숭어는 그 가격 이상의 가치가 있다.
아버지가 신안 수협에서 일하실 때 어란 제조업자들이 위판장에 직접 나와서 알 찬 암컷 숭어를 사가던 장면을 보셨다고 했다. 그 분들이 숭어 배를 직접 눌러서 알이 꽉 찬 것인지 확인하면서 골라갔다고 했다. 신선도가 좋은 꽃게를 선별할 때도 배를 눌리면서 확인하는데, 그 와 유사한 방식이라고 한다.
숭어를 다음에 시장에서 보시면 배를 살짝 눌러보세요. 겨울 암컷이라면 탱탱한 저항감이 느껴집니다. 그게 어란 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