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개, 붉은 피가 나오는 조개인데 왜 먹는 것일까? 알고 먹으면 완전히 다르다
피조개를 처음 손질했을 때 손이 멈췄다. 칼을 넣는 순간 붉은 액체가 흘러나왔다. 피였다. 조개에서 피가 나온다는 것이 너무 낯설었다. 상한 건가 싶어서 버릴 뻔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피조개의 특징이었다.
피조개는 조개류 중 거의 유일하게 헤모글로빈을 가진 종이다. 사람 피처럼 철분을 포함한 붉은 색소 단백질이 체내에 있어서 손질하면 붉은 액체가 나오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다. 버릴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 헤모글로빈 함량이 높다는 것이 피조개가 철분이 풍부한 식재료라는 증거다.
찾아보니 피조개 100g에 들어있는 철분 함량이 상당히 높다는 내용이 있었다. 빈혈 예방에 좋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피가 나온다는 이유로 기피하다가 좋은 식재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아쉬웠다. 피조개를 제대로 알고 먹으면 완전히 다른 식재료로 보인다.

피조개가 특별한 이유 — 헤모글로빈을 가진 조개
조개는 대부분 파란 피를 가지고 있다. 구리를 함유한 헤모시아닌이라는 색소 단백질이 있어서다. 피조개는 다르다. 사람처럼 철분을 함유한 헤모글로빈이 있어서 피가 붉다.
이 헤모글로빈 존재 덕분에 피조개 살은 다른 조개와 색깔이 다르다. 신선한 피조개 살은 짙은 붉은빛이 감돌고 윤기가 있다. 이 색이 선명할수록 신선한 것이다. 색이 탁해지거나 갈색으로 변하면 시간이 지난 것이다.
철분이 풍부하다는 것이 맛에도 영향을 미친다. 피조개는 조개류 중에서 감칠맛이 강하고 독특한 풍미가 있다. 날로 먹으면 살짝 비릿한 느낌과 함께 진한 맛이 올라온다. 이 맛에 익숙해지면 피조개 특유의 강한 개성이 매력으로 느껴진다.
수협 위판장에서 피조개 경매는 주로 겨울에 집중된다. 아버지 말씀으로는 피조개 철이 되면 경매대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하셨다. 부산 기장, 경남 고성, 전남 여수가 주요 산지인데, 산지별로 살의 크기와 색깔이 약간씩 다르다. 같은 피조개라도 어느 해역에서 잡혔느냐에 따라 살의 밀도와 맛이 차이가 난다고 하셨다.
위판장에서 피조개를 볼 때 경매사들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껍데기를 약간 벌렸을 때 나오는 살 색깔이라고 했다. 선명한 붉은빛이 살아있는 박스가 높은 가격에 낙찰된다.
피조개 제철과 신선도 확인
피조개 제철은 겨울이다. 11월에서 2월 사이에 살이 가장 통통하게 오르고 맛이 깊어진다. 수온이 낮아지면서 피조개가 지방과 글리코겐을 축적하는 시기다.
여름 피조개는 산란 직후라 살이 빠지고 맛이 밋밋하다. 이 시기에 피조개를 사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겨울 피조개와 여름 피조개는 같은 종인데 맛이 다르다고 느낄 만큼 차이가 크다.
신선도 확인에서 피조개만의 특별한 기준이 있다.
살아있는 피조개는 껍데기를 건드렸을 때 입을 닫으려는 반응이 있다. 입이 열린 채 반응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다. 죽은 피조개는 안에서 부패가 빠르게 시작되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을 고르는 것이 기본이다.
껍데기 외관도 본다. 신선한 피조개는 껍데기 표면에 각피가 남아있고 윤기가 있다. 각피는 껍데기를 감싸는 털처럼 생긴 막인데, 이것이 온전히 남아있을수록 신선하다. 각피가 건조하게 말랐거나 껍데기 색이 탁하면 오래된 것이다.
직접 열어서 살을 확인할 수 있다면 살 색깔이 기준이다.
| 확인 항목 | 신선한 피조개 | 선도 저하 피조개 |
|---|---|---|
| 껍데기 반응 | 건드리면 입 닫으려 함 | 반응 없이 열려있음 |
| 각피 상태 | 털처럼 생긴 각피 온전함 | 각피 건조하고 마름 |
| 살 색깔 | 선명한 붉은빛, 윤기 있음 | 탁하거나 갈색으로 변함 |
| 냄새 | 짭짤하고 바다 향, 약간 비릿 | 불쾌한 썩은 냄새 |
| 살 탄력 | 눌렀을 때 탱탱함 | 물렁하거나 퍼짐 |
| 피 색깔 | 선명한 붉은색 | 탁하거나 갈색빛 |
| 무게감 | 크기 대비 묵직 | 가볍게 느껴짐 |
피 색깔이 피조개만의 독특한 신선도 지표다. 손질했을 때 나오는 피가 선명한 붉은색이면 신선한 것이고, 갈색빛이 돌거나 탁하면 시간이 지난 것이다. 처음엔 낯설지만 한번 기준을 잡고 나면 다른 어떤 지표보다 직관적이다.
피조개 손질법과 해감
피조개는 손질 전에 해감이 필요하다. 전에 모시조개편에서 다뤘던 것처럼 3% 소금물에 1~2시간 담가서 모래와 이물질을 뱉어내게 한다. 피조개는 깊은 뻘에서 사는 특성상 이물질이 많을 수 있으니 해감을 건너뛰면 씹을 때 모래가 느껴지는 경우가 생긴다.
껍데기를 여는 방법은 두 가지다.
칼을 이용하는 방법이 기본이다. 조개 전용 칼이나 얇은 칼을 껍데기 이음새 부분에 넣고 옆으로 밀면 열린다. 이때 손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피조개 껍데기 가장자리가 날카로운 편이다.
뜨거운 물로 살짝 데치는 방법도 있다. 끓는 물에 5~10초 담갔다가 꺼내면 껍데기가 약간 열린다. 이 방법은 날로 먹기보다 조리용으로 쓸 때 적합하다.
껍데기를 열면 붉은 피와 함께 살이 드러난다. 살을 분리할 때 안쪽 근육을 잘라내면 된다. 살 주변에 검은 막이 있는데 이것도 먹을 수 있다. 제거하면 깔끔하게 먹을 수 있고 그냥 두면 피조개 특유의 맛이 더 진하다.
손질 후 흐르는 찬물에 빠르게 헹군다. 오래 담가두면 피가 빠져나가면서 맛 성분도 함께 유실된다. 빠르게 헹구고 바로 쓰는 것이 원칙이다.
피조개를 맛있게 먹는 방법들
피조개는 날것, 살짝 데침, 구이, 초밥 네 가지 방식으로 주로 먹는다. 각각 식감과 맛이 달라서 취향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날로 먹기가 피조개 맛을 가장 강하게 경험하는 방법이다. 손질한 살을 초장이나 레몬즙에 찍어 먹는다. 진하고 강한 맛이 올라오면서 피조개 특유의 개성이 느껴진다. 조개 특유의 맛에 익숙한 분들이 즐기는 방식이다. 신선도가 완벽해야 날로 먹을 수 있다.
살짝 데쳐서 먹기는 향이 강한 것이 부담스러운 분들에게 맞는 방법이다. 끓는 물에 10~15초 담갔다가 꺼내면 살이 살짝 익으면서 강한 비릿한 향이 가라앉고 단맛이 더 느껴진다. 이 상태에서 초장에 찍거나 간장에 찍어 먹으면 된다. 너무 오래 데치면 살이 수축하고 질겨진다.
구이도 잘 어울린다. 껍데기째 직화로 굽거나 프라이팬에 굽는 방법이 있다. 껍데기째 구우면 피조개 즙이 안에서 끓으면서 감칠맛이 농축된다. 껍데기가 약간 열리면서 즙이 보글거리기 시작하는 순간이 가장 맛있게 익은 타이밍이다. 이때 간장 한 방울을 넣으면 풍미가 더해진다.
초밥이 피조개가 가장 고급스럽게 활용되는 방식이다. 일본 스시 재료로 피조개가 자주 쓰인다. 살을 살짝 데쳐서 배를 갈라 펼친 뒤 밥 위에 올린다. 초장 없이 와사비 간장만으로 먹으면 피조개 특유의 감칠맛이 살아난다. 집에서 만들어도 꽤 그럴듯한 결과가 나온다.
피조개무침도 좋다. 손질한 살에 오이, 미나리를 넣고 초고추장에 무친다. 새조개무침과 비슷한 방식인데 피조개 특유의 진한 맛이 무침에 개성을 더한다.
피조개와 함께 먹으면 안 되는 것
피조개는 철분 함량이 높아서 함께 먹으면 좋지 않은 식재료가 있다.
녹차나 홍차를 식사 중에 마시면 탄닌 성분이 철분 흡수를 방해한다. 피조개를 먹을 때 차는 피하는 것이 좋다. 식후 1시간 이후에 마시는 것이 낫다.
칼슘이 많은 식품도 철분 흡수를 방해할 수 있다. 피조개를 먹을 때 우유나 치즈를 함께 대량으로 섭취하면 철분 흡수율이 낮아질 수 있다.
반대로 비타민C 식품은 함께 먹으면 철분 흡수를 돕는다. 레몬즙을 피조개에 뿌려 먹는 것이 단순히 맛 때문만이 아니라 영양 측면에서도 좋은 조합이다.
피조개를 처음 도전하는 분들에게
피가 나온다는 것 때문에 피조개를 기피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 마음이 이해된다. 처음 봤을 때 나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알고 나면 오히려 그 붉은 피가 신선도 지표가 되고, 피조개만의 진한 감칠맛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겨울 제철에 살이 꽉 찬 피조개를 살짝 데쳐서 한 점 먹어보면 왜 이걸 먹는지 바로 이해가 된다.
처음이 어렵지 한 번 경험하면 그 다음은 달라진다. 해삼도 그랬고, 성게도 그랬다. 낯선 식재료가 익숙해지는 데는 딱 한 번의 제대로 된 경험이 필요하다.
아버지는 피조개를 “용기 있는 자의 조개”라고 부르신다. 처음 보면 붉은 피 때문에 겁이 나지만, 한 번 먹어보면 그 강한 맛에 반한다는 뜻이다. 위판장에서 피조개 경매를 오래 보신 분이 하시는 말씀이라 무게가 달랐다.
아들에게 피조개를 처음 보여줬을 때 “피다!”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게 맞는 말이라고 해줬더니 더 놀랐다. 나중에 크면 이 조개 이름이 왜 피조개인지 스스로 이해하는 날이 올 것이다.
겨울 수산시장에서 피조개를 발견하면 그냥 지나치지 마세요. 껍데기를 하나 열어서 살 색깔이 선명한 붉은빛이라면 그 피조개는 좋은 것입니다. 살짝 데쳐서 레몬즙과 간장에 찍어 먹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붉은 피 때문에 망설였다면, 그 붉은 것이 오히려 신선하다는 증거라는 것만 기억하면 됩니다.